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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김시식지 ‘태인문화제’ 적극 육성 해야

기사승인 2019.07.10  15: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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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지자체도 흉내 낼 수 없는 차별화된 문화축제 우위 점령 가능성 커”

“2년 연속 남도 문예르네상스 사업 선정, 지속성 위해 市 예산 지원 절실”

▲김을 자연 건조로 말리는 모습.

 태인문화제 지속성 위한 간담회 개최

문화적 전승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태인문화제의 지속적인 성공을 위한 언론인 간담회가 지난 3일 태인동 주민자치센터에서 개최됐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태인문화제 추진 배경 설명과 향후 계획, 태인문화제를 지역 대표문화축제와 세계문화유산으로 육성키 위한 제안 설명 등이 논의됐다.
올해 2회로 추진되는 태인문화제(부제‘김이라 하여라’)는 오는 10월 19일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개최된다. 태인문화제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은찬·김영웅·백계만)가 주최하는 태인문화제는 전남도가 도내에 산재해 있는 지역자원을 발굴해 침체된 남도문예를 중흥시키고자 역점사업으로 기획한‘남도 문예르네상스사업’의 하나로 남도 문예르네상스 기획사업 공모 1·2단계에 모두 선정돼 4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추진위는 태인문화제를 통해 1643년 세계최초로 김을 양식하고 만드는 방법, 음식으로 조리하는 방법까지 개발한 태인도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세기 동안 이어져 온 태인도의 정체성과 고유성 등의 문화유산을 지역주민들이 지키기 위해 문화제를 직접 기획하고, 연출과 진행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타 축제와 차별화하고 주민 축제의 새로운 모델를 제시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문화제는 주민 중에서 제2대 김여익을 선정해 김 시배법과 김 제조법, 김 요리 재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재현하고 주민들과 참여자들이 함께하는 행사로 진행될 계획이다. 또한 김 요리법은 당시 주민들이 주로 먹었던 김국, 김냇국, 김자반, 김 쌈, 김부각 등을 주민들이 직접 시연하고 재현해 행사에 참여한 지역주민과 관람객들에게 제공될 예정이다.
이어 300여명의 주민과 광양제철소 직원이 함께 어우러져 김 풍작을 기원하는 용지 큰 줄다리기 행사 재현과‘김이라 하여라’는 제목의 연극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김선영 회장(광양예술발전소)은 “기계로 김을 만들고 건조하는 현대식 제조방식에 비해 태인도 김 시배법과 제조법은 고전적이라 할 수 있다”며“그러나 건홍식(고정식)인 섶 꽂기부터 김 묶기까지 모든 과정이 전통 재래식으로 오랫동안 진행됐고 현재까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무형의 자산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구히 보존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은찬 추진위원장은“우리가 이렇게 태인문화제를 추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뤄낸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므로 이제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그 위상을 알려야 하는 책임감이 들어 이렇게 축제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웅 추진위원장 역시“비록 지금은 제철소가 들어서는 바람에 김시식지의 명성을 잃었지만 태인도가 최조 김시식지라는 그 자체만으로 이를 보존하고 전승할가치가 충분하다”며” 다만 광양시의 예산 지원이 절실한 만큼 시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거들어준다면 정말 독특한 문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백계만 태인동장은 “민관이 하나가 되어 광양시가 지향하는 살기 좋은 지역 건설과 새로운 문화 창조, 지역자원을 활용한 아이디어 개발, 경제 활동으로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지속발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주민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태인도 김과 김여익
세계 최초로 김을 연구해 김양식 법을 창안한 사람은 김여익(金汝瀷(1606-1660)이다. 그의 호가 해은(海隱)인데 이는 바다와 인연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영암에서 태어난 김여익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부대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하던 중에 임금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향으로 낙향했다가 전남 장흥을 거쳐 인호도(仁湖島; 현재 태인동)로 들어오게 되었다.

‘김’ 이름, 왕이 직접 교지 내려
1642년 겨울에 섬진강 하구에 위치한 배알도(拜謁島) 해안에 표착(漂着)한 밤나무 가지에 이름 모를 해조(海藻)가 부착된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채취하여 시식(試食)하여 보았더니 양분과 풍미(風味)가 풍부하므로 이듬해인 1643년경에 애기섬(兒島:현재 광양제철소 부지로 편입) 주변에 율신(栗薪:밤나무 섶)과 죽림(竹林)을 이용한 원시적인 건홍을 활용, 양식법에 성공했다. 당시 김(해의)은 대국인 중국에 갖다 바친 진상품이라 일반 백성은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식품이었다. 이에 임금에게 진상했더니 왕이 맛을 본 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의 이름이 뭔가 알고 싶다고 하자, 전라도 광양 태인도에서  김여익이라는 백성이 진상한 해조라고 답하자 왕은 김씨가 처음 개발한 것이니 김씨 이름을 따서 ‘김이라고 하여라’는 교지를 하명, 오늘날의 ‘김’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연의 조건을 갖춘 김양식 환경
400년 동안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태인도 김은 맛이 고소하고 향기가 나며 밥을 싸서 먹을 때는 밥알에 딱 엉겨 붙는 끈적한 성질이 있어 싸서 먹기가 좋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태인도 김이 맛이 좋은 이유는 섬진강과 수어천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와 연결되어 있어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자연산 포자가 넘쳐나 인공 배양한 포자를 그물 발에 부착하는 부유식 보다는 산죽 등으로 개펄에 고정하여 꽂는 고정식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동 남해 여수 등 주변 해역에는 조개를 비롯한 어족이 풍족하였고 풍부한 담수(淡水)가 흘러내려 김 양식이 잘 될 수밖에 없는 천연적 조건을 갖추었던 것.    

다양한 김조리법 개발 원산지
김여익에 의해 김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김 관련 음식 조리법도 연구 발전하게 되었는데, 당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농산물이나 생필품 등을 구한다는 것이 육지에 비해 몇 배는 더 어려웠기 때문에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김이나 해조류를 이용한 조리법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되었다.
생김을 뜯어와 막 끓인 김국을 비롯해 생 김밥, 김쌈, 김자반, 김냉국, 김전, 파래무침, 김부각에 이르기까지 김 관련 요리의 시원(始原)을 이루었다.

‘김’ 문화제, 역사성과 차별성 동시에 가져 
또한 부족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김을 싣고 하동장을 가기 위해 섬진강 뱃길을 열어 하동장을 비롯한 옥곡장, 진상장 등에 교역활동을 하며 필요한 물자들을 실어 날랐다. 하동에서는 섶과 나무, 식량을, 태인도에서는 김과 해산물을 비롯한 어류 등을 내다 파는 교통의 수단이자 생존의 통로로서 섬진강과 태인도는 400년 동안 종점이자 기점이었다. 김선영 회장은 “이런 역사적 근거를 잘만 살린다면 태인문화제는 국내 어떤 축제와 견주어도 차별성과 역사성에서 우위를 점령, 독특한 문화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양시가 이런 독특성을 감안해 태인문화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다면 전남 제일의 문화제를 넘어 글로벌한 문화제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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