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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유독 교회가 많고 또 이단이 설치는 이유

기사승인 2020.02.25  16: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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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가장한 이단종파인 신천지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로 인해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내 머릿속에는 두  인물이 먼저 떠올랐다. 이성적(理性的)인 믿음을 강조했던 중세신학자 토마스아퀴나스와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신앙’을 주장한  칸트가 그렇다. 

지금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종교가 시급히 회복해야할 것은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이다. 그동안 개신교는 물론 대부분 교회들이 비이성적인 것을 마치 믿음이 좋은 것인냥 가르쳐왔거나 또는 묵과해 왔는데 이것처럼 비이성적인 행위도 없지 싶다. 

한국에 수시로 이단이 독버섯처럼 번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 역시, 이성적인 건전한 믿음보다는 이성을 초월해야 진짜 믿음인 것처럼 은연중에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가 됐건 자신의 믿음과 교리를 정당화 하려면 건전한 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 사회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신천지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가장한 악의 바이러스일 뿐이다. 그들이 추종하는 교주 이만희라는 사람이 현재 어떤 상태이며 또 어떤 행보를 해 왔는지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을 테지만, 이미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는 것이다. 개인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신천지는 가장 비이성적이고 가장 비열한 몽상가들의 집단에 다름이 아니다. 지금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행위가 아니라 정신 상담이다. 

그 어떤 종교도 상식을 파괴한다면 과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아니 이성의 포기를  요구하는 종교는 그 어떤 종교가 되었건 거부해야한다. 이성을 포기하는 순간 종교의 제물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는 그런 제물을 먹어치우면서 독버섯처럼 자생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공동체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이성과 종교의 문제는 이미 중세시대에도 큰 쟁점 중의 하나였다. 신을 어떻게 우리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성을 초월한 신 역시 존재가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성이 인지하지 못하는 신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 결코 믿음에 위배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토마스아퀴나스는 인간의 구원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믿을 것을 아는 것’, ‘추구할 것을 아는 것’, ‘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공통분모는 바로 ‘안다‘것이다. 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은 이성밖에 없다. 이성이 그 사실을 제대로 이끌어 줄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신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앙을 위해 이성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믿음을 배반하는 행위다. 생각해보라. 지금 내가 무엇을 믿는가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는 행위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신비한 영역이 없는 것은 아니나 신비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이성의 한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런고로 이성을 초월하는 신앙은 존립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준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그동안 지나치게 가슴을 강조해 왔으며 은근히 신비한 체험, 즉 기적을 요구해 왔다. 믿는 행위에 뭔가 특별한 것이 따라 와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 보다는 특별함을, 이성적인 것보다는 비이성적인 것을, 일리(一理)보다는 진리(眞理)를 지나치게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그런 것들이 뒤죽박죽 혼합이 되어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종교는 절대 이성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동안 지나치게 가슴만을 요구했다면, 이제 머리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머리가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가슴도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포이에르바하는 ”현실의 자신과 세상에 만족하지 못한 인간의 상상력과 소망이 ‘신’이라는 이상적 존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위안을 받으려 했다“고 주장을 했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신이 전지전능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전지전능의 힘을 은근히 갖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라는 것.

지금 한국교회가 조속히 회복해야 할 것은 건전한 이성과 일상의 삶이 바로 기적이며 가장 건강한 신앙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요, 신앙의 자리라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은 절대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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