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이나 됐어. 인자 그만 오씨요. 제발 그만 오씨요 잉”
먼저 간 친구를 대신해 28년째 아들이 되어 준 광양읍 A씨
사납게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오락가락 장맛비가 달래주던 지난 9일, 80대 어르신이 사는 광양읍 오래된 한 아파트에 손님 A씨가 찾아왔다.
손님이랄 것도 없다. 매번 집주인의 오지 말라고 하는 만류에도 듣는 둥 마는 둥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을 어르신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28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들과 손녀를 한꺼번에 잃었다.
어르신의 만류에도 부득불 찾아오는 사람은 바로 아들의 친구였던 A씨.
A씨는 어머니와 가족을 두고 황망히 세상을 떠난 친구를 대신해 어르신을 살펴왔다.
어르신의 며느리이자 친구의 미망인이 가장이 되어 생계를 책임지며 갖은 고생을 다할 때 어르신은 아들이 남기고 간 손자들을 키우며 자식을 가슴에 묻고 또 묻으며 힘들고 아픈 시간을 견뎌왔다.
A씨는 어르신을 자주자주 찾아뵙고 안부를 물어왔고 남은 가족에게도 힘이 되어주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부모 모시는 일도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건만 A씨는 삼십여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소홀함 없이 먼저 간 친구의 몫까지 대신해 어르신을 살피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가슴 뭉클하고 따뜻해지는 우리 동네의 아름다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A씨를 찾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A씨는 무척 쑥스러워하며 기꺼이 응해주었다.
이날도 A 씨는 “평소에 경로당에도 나가지 않는 어르신이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 답답할 텐데 건강이 염려되어 찾아간 것 뿐”이라고 말했다.
28년 세월이 엊그제인 것 같다는 A씨는 어르신이 아들 친구인 자신을 보며 아들 생각으로 가슴아파할까봐 많이 망설여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친구를 대신해 어르신을 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에 한해 두해 찾아뵌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아들생각에 매번 눈물을 훔치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만 앞으로도 계속 찾아뵐 것이라고 했다.
A씨와 어르신의 인연을 처음 알려 준 제보자는 이날 A씨와 함께 어르신 댁을 찾았다.
A씨가 주차장까지 나와서 자신을 배웅하는 어르신에게 준비해 간 용돈을 전하려고 하자 어르신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고, A씨는 완강하게 받지 않으려는 어르신을 주차장에 세워 둔 채 잽싸게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봉투를 두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제보자가 전해주었다.
영혼 없는 봉사활동 1할쯤 해놓고 9할을 생색(?)내는 얼굴 내밀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물질은 끝없이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거꾸로 황폐해져가는 요즘, A씨의 28년 숨은 선행은 정말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뭉클한 미담이 아닐 수 없다.
먼저 간 친구를 대신해 어르신과 자식의 인연을 이어온 A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것을 무척 부담스럽고 쑥스러워 했다. A씨는 바로 e스포츠 회장 안영헌 씨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