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정치가 악화된 계기가 된 것은 상복을 몇 년 입느냐를 두고 서인과 남인간의 의견차이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동방예의지국답게 죽은 자에 대한 예우를 어떻게 하느냐로 싸움이 난 것 이지요? 성리학이 지배하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예의와 관련된 ‘예법’은 우리가 현재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나 봅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조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었느냐에 따라 때론 서인이 집권을, 때론 남인이 집권을 하게 되더군요. 비가 와도 뛰지 않았던 양반의 체통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