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속상한 일이 있어 가까운 뒷산에 잠깐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길가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평소와는 달리 그날따라 그 무덤 속 주인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언젠가는 모두 이렇게 될 인생인데, 속상한 것이 있다면 그냥 훌훌 털어버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속상한 것이 한꺼번에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순간, ‘힘들고 속상할 때는 술병을 찾지 말고 무덤을 찾는 게 훨씬 도움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번 설날에도 조상의 무덤을 찾을 텐데, 그 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어느 지중해 공동묘지 정문에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 문장을 풀어보면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가 죽는다’는 뜻으로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과 비슷하지 싶습니다. 결국 너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너무 까불면서 살지 말라는 경고조로 들려 약간 얄밉기는 하지만, 삶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죽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모 재벌이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 많은 돈과 명예를 두고 말입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공수래공수거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재벌의 죽음 덕분에 사람답게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하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습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