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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뒤편에서

기사승인 2024.04.09  10: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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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향림 수필가

예전에 나는 혼자 하는 일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혼자 하는 게 두려웠다. 혼자란 세상에 버려져 떠돌아다니는 똥개처럼 비극이라 여겼다. 그런 내가 뭐든 혼자 시도한다. 혼자 밥 먹고 차를 마시는 일 말이다. 가끔 차 타고 멀리 나가보기도 한다. 낯선 장소에 홀로 머무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새로운 곳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행동할 여유가 생긴다. 내가 일탈을 꿈꾸는지 모르리라.

그래서인가. 나는 종종 산책으로 잠시 일상을 벗어난다. 베란다를 넘어가는 볕 그림자에 눈길이 꽂히면 욕구가 발동된다. 그 순간 머릿속은 갈 곳을 찾아 방향을 잡는다. 때로는 생각지 못한 산책로가 발견되기도 한다. 나는 바닷가 쪽으로 정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차 앞에 와서 주머니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내 건망증을 탓한다. 돌아가 차 키를 가져오기 귀찮다. 가까운 거리를 걸어보자 마음먹는다. 

햇볕은 적당하나 맨살에 닿는 바람에서 겨울의 여운이 감돈다. 가벼운 옷차림이라 양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길가에 웅크린다. 발밑 보도블록 틈에 이름 모를 풀들이 키 재기하며 존재를 드러낸다. 보도블록 옆 개나리 꽃망울은 병아리 주둥아리처럼 앙증맞다. 요즘 흐드러진 개나리 군락을 보기가 어려워 아쉽다. 꽃들의 생사도 사람들의 편리에 맞춰 꾸며지는 일상이 된다.

휜 개나리 줄기 따라 시름 한 겹 접으며 늘어지는 순간도 괜찮은데…. 개나리, 흩날리는 벚꽃, 노란 민들레를 지나치며 햇빛에 내 몸을 맡긴다. 내 안에 고인 습기까지 고들 하게 말릴 작정이다. 오르막길 도롯가 안쪽에 버려진 단층 빌라가 보인다. 여름에는 풀이 무성하고 겨울 동안 스산해 지나친 곳이다. 흰 콘크리트 몸통에 남색 지붕이 삼각으로 얹힌 2층 빌라다. 인적 드문 길이지만 초록이 덮이고 목련 봉우리가 등 켠 낮이라 용기 낸다. 계단을 내려가니 축축한 낙엽 쌓인 길이다.

나는 빌라 입구를 지나 건물 뒤쪽으로 향한다. 모퉁이 돌아 빌라 벽면을 마주한 나는 몇 초간 입이 벌어진다. 낡은 흰 벽을 타고 뿌리인지 줄기인지 모를 선들이 벽면 가득하다. 세월 먹은 담쟁이넝쿨 아닌 나무다. 2층 높이 벽면 중앙에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잔가지들이 씨실과 날실로 얽혔다. 마른 가지 위 연둣빛이 아닌 불꽃 모양의 붉은 싹들이 기지개를 켰다. 벽을 타고 올라간 가지들은 자연이 그린 벽화다.

어느 화가가 이런 명작을 그릴 수 있으려나. 담쟁이 가지는 집의 온기를 가늠하고 바람의 방향과 햇볕의 양분으로 지탱하고 뻗친다. 새싹 옆 떨어질 듯한 낙엽과 까만 씨가 쪼끄마하다. 나뭇가지에 붙은 매미 껍데기 등 가운데 벌어진 틈이 보인다. 유충인 매미는 땅속 6년의 어둠을 뚫고 나뭇가지에 올라와 발톱을 고정한다. 기다린 끝에 허물 벗고 날개를 펼쳐 7년 만에 어른이 된다.

그 시간의 껍데기가 내 앞에서 바스러질 듯 박제돼 멈췄다. 매미는 7년을 기다려 2주간의 생을 마감하고 흙으로 돌아간다. 책에서 습득한 매미의 마지막 흔적이 내 앞에 현실로 다가온다. 무(無)로 돌아가는 삶의 여정이여. 누구든 비껴가지 못하리라. 봄날 꽃들의 뒤편에 가지 뻗어 때를 기다리는 담쟁이의 생애가 피어난다. 매미가 홀로 숨죽인 자리를 새순들이 초록으로 곧 뒤덮겠지. 나는 그 과정을 상상하며 조용히 지켜본다. 혼자 맞닥뜨리는 것들이 은근하지 아니한가.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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