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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명화산책-7 파블로 피카소(1881~1973)

기사승인 2020.02.11  17: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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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애같이 그리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 

 

천재 화가 피카소가 말했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상생활의 먼지를 털어준다”고. 때론 예술이 밥 먹여 주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원시인들이 알타미라 동굴에 그림을 남겼던 것을 보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표현의 욕구를 타고났겠지 싶다.

사람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밥만 먹고는 살지 못한다.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든, 영화를 보든 어떤 형태가 됐건 예술적인 감수성이 조금은 충족되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림의 의미를 알든 모르든 유명한 그림 앞에 줄을 서는 이유다.

예술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꾸준히 자기 변신을 시도 하면서 진화해 왔다. 진화는 언제나 용기를 제물로 바쳐야한다. 기존의 개념을 확 엎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론 비난도 감수해야 하지만 그런 비난을 겁내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을 해 온 화가들은 마침내 기존의 화풍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피카소 역시 '큐비즘(입체파)'이라는 화풍을 개척했고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피카소는 대상을 최대한 간략하게 표기하려고 애를 썼다. 피카소가 그린 대부분 여성들의 누드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매력이 숨어 있다. 낯설게 보기를 통해 다시 누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

입체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비뇽의 처녀들’ 또한 그렇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아비뇽의 처녀들’은 그렇게 놀랄 만한 작품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때 화가들과 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 피카소가 전통 회화의 원칙을 무시한 채 매우 혁신적인 화풍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된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대중에게 다시 공개했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충격을 안겨 준 작품이다. 

“어린애같이 그리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 고 말했던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의 화가다. 서유럽의 변방이었던 스페인은 서양 회화사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나라이기도 하다. 피카소라는 뛰어난 인물이 나오게 될 토대를 이미 닦아 놓은 것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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