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학교수들이 선택한 사자성어는 임중도원이었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인데, 2020년에도 이 사자성어는 여전히 우리 삶을 대변해주지 싶다. 특히 지금의 우리나라 사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개인이든 집단이든 항상 짐은 무겁고 길은 멀게 마련이다.
단군 이래로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우리 등을 두드려준 적이 한번이나 있었던가 말이다. 돌아보면 매 순간이 위기였고 전쟁이었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 보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이 말하기를 성숙한 인간은 ‘상징계’를 살아가지만 미성숙한 인간은 ‘상상계’를 살아간다고 했다. 상징계는 갈등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현실을 말하고 상상계는 마치 어린아이가 몽상 속에 빠진 것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을 바라면서 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생각하면 그렇다. 상상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내게 만은 어떤 어려움이나 아픔 없이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 불행이 내게 주어지면 원망을 쏟아내는데, 이게 바로 어린아이 같은 상상계에 머물렀다는 방증이다.
성숙한 사람은 불행이 몽땅 나를 피해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건 공상 속에서나 있는 일이지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해가 노루 꼬리만큼 남았다. 여전히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무겁겠지만 그 짐을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짊어지고 갈 때 역설적으로 삶의 무게는 줄어들 것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