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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농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니...

기사승인 2024.03.26  15: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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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딸 고은이가 요즘 너무나 수상하다. 너무나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아빠인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특별하게 보인다. 왜나하면 고은이는 학교밖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참 힘겨운 사춘기를 보냈다. 선생님이 당기고 부모가 밀고 교육부가 괞찮다고 이래도 봐주고 저래도 모른척해서 겨우 겨우 졸업한 중학교는 그나마 다행이다 했는데 또 이런 애들이 오기만하면 어서오라고 받아주는 가까운곳에 있는 학력인정 고등학교인 조리고를  입학한지 6개월도 안되어 보기좋게 자퇴했다.

그냥 시간 맞춰 얼굴만 비춰주면 되는데 그것도 힘들다고 보기 좋게 차버린 것이다. 보통의 학생들이나 어른들같으면 몇 일이나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자퇴에 대해서 심각한 표정으로 상담받아 따지고 재보고 결정할 법도 한데 숙려기간을 보름정도 가져 보더니만 그냥 쿠울(Cool)하게 약간의 고민과 아쉬움도 없이 자퇴해 버렸다. 학교밖 청소년이 된 것이다.

에이그 !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안된다 하더이만 그말이 너무나 맞는 듯 했다. 그러고 한 두 달정도 집에서 놀다가 심심해서 고기집 알바를 가더니 어느날 부터인가 공부를 하겠다며 스터디 카페 이용권을 끊었다 하길래 나는 내심 폼만 잡겠거니 생각했다. 원래 공부는 공자(工字)도 모르고 책은 받은 새 책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터라 도무지 믿기가 쉽지 않음이 당연했다.

사실 학교는 거의  출석이 결석보다 조금 많았고 그출석도  오전 내 자다가 끝나기 한시간 전에 빈 가방을 울러 메고 가서 얼굴 도장만 찍을 정도의  지각이 대부분 이었으니 말이다. 그랬던 애가 이번 고등과정 졸업 검정고시를 보겠다 한다. 그러고는 한 술 더 떠서 간호학과를 가고 싶다 한다. 처음에는 좀 낮은 대학의 간호학과를 말하더니 지금은 대학병원이 있는 학교의 간호학과를 가겠다 한다. 그러면서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도와 주고 있는 영어ㆍ수학 개인 수업도 챙겨서 가고 스카에서의 자습도 하루도 안 빼먹는다.

무슨 계기가 있어서인지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알바했던 고깃집 여사장님이 예전에 늦은 나이에 모 대학 간호학과를 다니다 지금의 고깃집을 하고 있다며 이런 저런 충고섞인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한다. 그래서 일까? 확실한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꿈과 목표가 생긴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이지만 너무나 큰 변화인 것이다. 예전의 혜원이가 아닌 그 이전의 혜원이로 돌아갔다. 그 길고 긴 방황의 터널을 이제는 확실히 빠져 나온 것같다.

초딩때는 그저 평범한 도시 여자아이로 햄스터를  키웠고 또 고양이도 키우자고 아빠에게 떼스다 안되자 아파트 주위의 길양이들을 챙겨 이름을 지어주고 간혹 고양이 캔을 사서 아이들을 찾아 차 밑을 기웃거리는 정말 예쁜 아이 였다. 그런데   중1이  되더니 무섭게 변했다. 꼭 지같은 애들 둘을 집에 데리고와서는 밤새 지 방에서 놀면서 학교도 안갔다. 셋이 절친인데 각자의 중학교가 모두 달랐고 저마다 지네 학교의 대표 문제학생 이었다.

학교는 액사세리이고 지들끼리 모여서 밤새 수다 떨다 배고프면 배달음식으로, 그리우면 한대 태우며 중1ㆍ2를 보냈다. 한 몇 일은 우리집, 또 한 몇 일은 재네집으로 돌아다니며 놀아서 아마 다른 두 아이의 부모도  울딸을 너무나 잘 알았을 테고 나도 그 두 아이를 잘 알고 지냈다. 처음 중1 때 우리집에서 한 일주일을 학교도 안가고 딸애 방에서 셋이 빈둥대는것을 보고 쫒아내기도 했는데 그것도 잠시 그러면 이번에는 다른 애 집에서 둥지를 틀고 셋이 한 일주일을 보내곤 했다.

딸애가 안보이면 걱정이고 보이면 잔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결국은 내 눈에 보이는것이 걱정이 덜 들어서 그뒤로는 그러러니 하고서는  지 방에서 몇 일을 죽치고 빈둥거려도 모른척하고  지내곤 했다. 그러다 너무 오랫동안 문제덩어리인 딸애 친구들을 보게되니 그 애들도 조금은 이뻐보이는 정이 들 정도였다. 난희라는 애는 친구 아빠라고 얼마나 애교스럽게 인사를 하는지, 웃으며 ''아버님 안녕하세요?'' 했다. 울 딸도 아마 갸들 부모님들에게 그랬을 게다.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의 챙김 1번이고 집에서는 부모들의 걱정거리 문제애들이 말이다. 

학생때 절친 셋이서 함께  재미있게 수다 떨고 노는것은 좋은데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아 문제인 것이다. 학교는 안가는 것이 기본이다. 한 학년 전체 출석일수의 3분의 2를 채워야 유급을 면하는데 어느정도의 위기상황이 오는 정도에서 담임선생님이 경고를 한다.  그때부터는 계산을 잘해야 한다. 학교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지각이나 조퇴 몇 번이 결석 하루로 환산 되기에 실수로 착각하면 유급이 되어 후배들과 동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각과 결석 쿠폰을 잘 섞어 쓰고 난 후에 하루나 이틀을 남겨두는  배수의 진을 치고 서야 남들 처럼 학교에 열심 출석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알아서 그러는지,  이게 난희라는 딸애 친구의 출석 스타일인데 울 딸은 그나마 좀 나았다. 죽어도 동생들하고 동창이 되기 싫어서 일게다. 그러니 난희 엄마는 속이 얼마나 탔을까? 참 똑똑한 애들이다. 중학교의 학사 행정과 의무교육 제도를 최대한 활용할줄 알았다. 그러니 아마도 세 아이의 중학교 교장선생님들 모두 이 아이들의 이름을 알았을 게다. 각자가 학년 전체 1등 결석생에 지각생이니 말이다. 그때 부터 학교에 출석은 해도 이미 학교밖 청소년인 셈이다. 딸애 엄마는 많이도 찾으러  다녔다. 물론 다른 두애의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중 2때인가 어느 여름날 다리의 여러 곳에 찰과상을 입은채 집에 왔다. 물어보니 시골 빈집 지붕에서 친구와 장난치다 떨어져 그랬다 한다. 그말이 사실인지 믿지는 않았다 마는 후에 정리해보니 그게 아닌 것이 확실했다. 우연히 지들끼리 주고 받은 카톡에 오토바이 애기가 있었다. 오토바이 타다가 그랬던 것이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처음에는 지같은 남학생 뒤에 얻어 탓을 것인데 그러던 것이 급기야 오토바이를 남학생 뒤에서 얻어 타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사고를 쳤다.

중2 겨울 방학때, 밤에 밖에 놀러 나가서 길가에 세워 놓은 배달용 오토바이를 허락없이 타고 가다가 헬멧 미착용으로 경찰에 붙들렸는데 아마 7ㆍ8키로는 넘게 갔을게다. 그것도 지같은 애를 뒤에 태우고서 말이다. 절도인 것이다. 중2 여학생이 뒤에 다른 여학생을 태우고서 도시의 밤길을 스릴차게 달렸을 게다, 참 대단한 울딸이다. 남자 애들이나 할법한 대범한 행동이다. 그 나이의 남학생들이 가끔 사고 쳐서 뉴스를 타는것을 보고서는 그런갑다 했는데 내딸이 그럴 줄이야! 나는 그럴때 흔히 하는 리액션인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 '' 라고 하지 않고 ''참 잘 잡혔네 ! ! ! 그러고 가다가 사고나 났으면, 그것도  헬멧도 안쓴채 뒤에 다른애까지 태우고'' 했다. 

정말로 경찰에 걸려서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사고라도 났었다면 하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리고 또 다행인것은 촉법소년이라 절도이지만 약 1년하고도 6개월 정도로 집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청소년 보호센터로 출석하는 정도의 가벼운 교육벌을 받았다. 그런 벌은 더 받아도 되는데하고 난 속으로 좋아했다. 계집애가 낯에는 자고 밤만되면 천지를 싸다니는데 법에 코 끼어 싫어도 억지로 가야하니 딸애 둔 부모로서는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애랑 부모가 좀 쉴 수가 있겠네 하며 좋아했다. 얼마나 에너지와 호기심이 넘치면 그럴까마는 그래도 이왕이면 밤이 아닌 낮에 싸다니든지 할것인데 그 반대로 밤새 도시를 싸돌아 다니니 부모입장에서는 걱정이 항상 앞섰다.

그런데 그나마 싫어도 고삐가 억지로 생긴것에 대하여 본인 자신이 잘못 했으니 무어라 불평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교육벌 출석은 가정법원에서의 재판 결과였다. 학교는 가기가 싫어도 무조건 가야되는것은 지각 3일이 결석1일로 환산되고 결석이 몇 일 이상이 되면  교육벌이 다시 연장되거나 심할 경우에는 소년원으로 갈 판이었다.

학교 출석 정도와 센터 교육벌 출석 정도의 결과에 따라서 그정도에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진짜 사고 뭉치들이 모여있는 소년원으로 보내져야 할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기 싫은 학교 가랴 한 시간 동안 지하철 타고 센터에 가서 얼굴 도장 찍으랴, 쉽지 않았다. 잠도 많은 애가 밤에 놀아야지, 학교는 가기 싫은데 안갈수가 없지, 벌교육은 벌이니 더더욱 안갈 수가 없지. 학교안의 평범한 애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것이 딸에게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재판까지 받았으니 그정도의 벌은 감당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교육벌 출석이 빨리 끝날 수 도 있었는데 학교 출석 점수가 나빠 한 번 더 연장됐다. 지는 싫어도 아빠인 나는 속으로 더 좋았다. 억지로 고삐를 더 오래 걸어두게 되어 더 나을것 같아서 였다. 그래서 힘을 더 빼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억지로 학교가고 또 센터 가고 난후 조금 놀고 나면  피곤해서 어쩔수 없이 집에 와야해서 사고 칠 겨를이 없었는 지도 모른다. ㅎ ㅎ

참 맹랑한 딸애다. 할머니께서 예전에 가끔 하시던말씀인  귀축스럽다가 딱 맞는 표현이다. 여자애가 얼마나 겁이 없으면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했는지 그것도 남의 것을 허락도 없이. 지 아부지를 닮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해 보니 나도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예전에 중2 겨울방학때 육지로 가서 자전거를 훔쳐 타다가 파출소에 붙드려가서 정학을 먹었다. 섬애들이  벌인 사건으로 약 15명이 해당되었고 섬 머슴아들이 단체로 육지로 불려가서 여기 저기서 조사를 받았다. 사실 나는 광양 제철소가 있는 태인도 섬사람이다. 제철소 굴뚝이 집앞에 있고 이순신 대교는 한 발 걸어 돌아가면 보인다. 40년 전의 자전거나 지금의 오토바이가 별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같은 정도의 사고이지 싶다.

딸애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학부모인 우리도 청소년 지원센터에 벌교육으로 불려갔다. 약 10명 정도의 부모들이 와 있었다. 각자가 저마다의 사고내용도 다를텐데 그중에는 고은이 남자친구의 아버지도 있었다. 남자애니 아마도 쌈박질이었을 게다. 얼핏 듣기로 좀 한다고 했고 울 집에도 서 너번 온적이 있었다. 부모가 무슨 죄라고 하겠지만 자식 잘못 키운 죄가 아닐까?

강사 선생님께서 부모님들을 위로겸 책망도 하시면서 우리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며 품어 줄것을 부탁하셨다. 여러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중에 하나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는데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처음 듣는 말이라 생소해서 얼핏 이해가 안갔는데 지랄 이라는 말은 이해가 됐다. 쉽게 말해서 제정신 아닌 상태라는 뜻인데 이러한 지랄같은 행동이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어서 그것을 어느 정도 쓰고나면 더이상 하지 않는다는 뜻 이란다. 그러니 우리의 아이들의 지금과 같은 어긋난 행동이 사춘기 시기의 방황으로 홍역처럼 왔지만 이 시기만 잘 넘기면 그렇지 않은 애들보다 더 잘 할거라는 것이다. 정말로 그럴 것이다 하셨다. 

그로부터 일년반이 조금 더 지나니 정말로 그러했다. 무슨 놈의 에너지가 그렇게 많은지. 아마 부산의 좀 유명한데는 다 가봤을 테고 동네에서도 청소년들이 갈만한데는 안가 본 곳이 없을텐데 벌교육을 받으면서도 밤새 놀기가 바빴다. 그래서 항상 새벽 늦게 잠들어 오전 내 자고 억지로 일어나 마지막 한시간 수업전에 학교를 갔다. 학교 출결 상태가 벌교육의 재 연장에 영향을 주니 아니 갈수는 없고 해서 눈비비고 빈가방들고 아빠가 차로 모셔다 주면 가는것이다. 그리고 또 지하철로 한시간 거리의 센터에 가서 또 얼굴도장을 찍는다. 거기도 내가 바쁘지 않을때는 차로 데려다 주기도 하였는데 일년 육개월정도로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인데 용케도 잘 마쳤다.

아마 그런 과정속에서 여러가지를 느끼고 교육받으며 조금씩 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을 알았을테고 그속에서 자신의 모습과 위치를 보았을테다. 뒤에 딸애가 말한  표현이 있는데 세상이 팍팍하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는 남들보다 조금 더 사회에서 많이 부댖겨봐야 철이 빨리 들것같다는 생각에 검고시험으로 한살 많은 오빠와 함께 대학엘 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도 남들은 살짝 앓았을 사춘증을 훨씬 심하게 앓아서 20대에 느껴야 할것도 조금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고깃집 알바를 하며 고기 구워주고 불판 딱으며 느꼈을 돈벌이에 대한 힘듬과 거기서 알바 대학생 언니ㆍ오빠들의 충고섞인 조언과 그리고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의 샘들의 걱정어린 도움에 학교안의 또래들보다 더깊은 인생의 사춘기를 보냈을 듯 싶다. 방황과 고뇌속에서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책과 학교 선생님들의 수업이 아닌 자신이 한 발을 헛딧고 두번을 넘어져서 직접 찾은 듯하다. 

고은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자퇴하러 갔을때 같이 가서 학부모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아빠인 나야 내심 섭섭했지만 딸애는 그저 덤덤해 하였고 담임 선생님은 아주 많이 걱정해 주셨다. 그뒤  6개월 후에 검고 원서 기록난에 기재할 재적 증명서 발부 관계로 다시 찾아 갔다. 그랬더니 예전의 담임 선생님께서 대견해 하시면서 먹을것을 이것 저것 챙겨주셨다.

참시라로 담임했던 아이가 늦지않게 꿈과 목표를 가진것에 대한 응원인 것이다. 자퇴를 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교밖청소년이 되어 방황의 터널을 나오지 못해 힘들어 하기에 그나마 꿈과 방향을 잡아서 도전하려는 아이가 이뻣을 게다. 나도 가끔 응원을 해준다. ''아빠가 보니 네가 니 오빠보다 공부머리는 더 나은것 같더라. 어릴때
토끼, 고양이, 강아지, 노루, 사슴, 기린, 호랑이, 사자라고  아빠가 말하면 너는 금방 따라서 외우던데, 니 오빠는 너 만큼 빨리 못 외우던데, 그리고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카톡에 얼마나 잘 표현 하는지 ! 네가 공부를 안해서 그렇지 하면은 더 잘할거야 ! ''

사실 그랬다. 울 딸은 표현력이 대단하다. 예전에 누군가에 대하여 말을 하니 초 3학년 애가 '' 아 ! 그 이쁜척 하는 아줌마 ! '' 하고 말했다. 그저 멀리서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가장 간략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통찰력으로 그간의 방황속에서 만났던 사회와 인생을 이해하고서 좀 더 깊이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커 가기를 소망해본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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