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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커피

기사승인 2024.03.13  10: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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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관수 소설가

카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선다. 뭔가 일 보러 들르기도 하지만 커피 마시러 애써 찾기도 한다. 들어서자마자 커피가 혀끝에 닿는다. 코끝이 커피를 가져다 입안에서 향을 빚는다. 첫눈처럼 내린다. 꽃향기 내뿜던 소녀 입술이다. 커피는 꽃이다. 꽃말은 ‘잊지 못하여’다. 가슴에 맺힌다, 커피의 언어가. 구석진 곳에 자리한 테이블에 다가가 자릴 잡는다. 창이 없어 음침하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메뉴에 커피는 보여도 향은 안 보인다. 눈을 감는다. 향이 어디까지 스며드는지. 향을 더듬는다. 원두에서 뽑아낸 커피는 검다. 그렇지 않다. 그건 착시현상이다. 커피는 검은색이랑 다르다. 지나간 사랑을 곱씹는 색. 다가올 사랑을 기대하는 색깔. 마주하는 이 없이 홀로 앉은 지금의 빛. 이 세 가지가 검은 커피의 삼원색이다. 커피 검정은 ‘잊지 못하여’의 광채다.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다. 그냥 사랑을 채우고픈 마음이다. 커피는 사랑의 기도를 담는다.

봄에 백운산에 올랐다. 아침나절 동곡에서부터 걸었다. 억불봉을 들러 백운산 정상을 지나 형제봉으로 하산했다. 배낭도 없이 양손에 1리터 물병을 하나씩 들었다. 등산이 아니라 그냥 걷고자 했다. 산보처럼 노닐고 싶었다. 배낭이 없으니 점심 식사도 간식도 챙기지 않았다. 주머니에도 먹을 걸 담지 않았다. 물로 배를 채우려 맘먹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다. 물을 마셔도 허기가 멈추지 않았다. 물마저 얼마 안 남았다. 수요일이라 사람들이 드물게 오갔다. 몇 사람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구걸하고픈 맘이 굴뚝 같았다.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역겨웠다. 그들을 비켜 지나쳤다. 땀 흘려 걸으며 굶어 배고픈데 음식이 역겹다니. 힘없는 육체가 칼로리를 거부하다니. 에너지가 고갈되자 미토콘드리아에 감춰진 에너지가 솟는 걸까. 백운산 물만 마셔서, 끝없이 씻겨 비워진 몸이 공명하는 걸까.

몸은 힘이 없어도 지치진 않았다. 허기져도 걷기는 했다. 평지보다 오르막이 더 편했다. 연애하듯 걸었다. 눈이 맑아졌나, 사물이 깨끗하고 뚜렷해졌다. 흙냄새 풀냄새 나무 냄새가 호흡기를 애무했다. 공명의 에너지 탓일까. 굶으며 땀 흘려 걸으니 몸의 진정성이 드러난 걸까. 백운산 사물들이 다 청명했다.

지나려는 길섶에 꽃이 보이는데 진달래였다. 조붓조붓한 길목에 진달래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노닌다. 그 수다에서 향기가 났다. 다른 향들과 달랐다. 가볍고 연하고 부드러운 데 깊숙이 파고들었다. 호흡기를 지나 세포를 자극했다. 몇조 개나 되는 몸의 세포들이 들썩거렸다. 미토콘드리아가 반응했다. 그들에게 다가가 눈을 들이밀었다. 이게 무슨 향이지. 커피가 떠올랐다. 손으로 진달래를 뜯어 입에 넣었다. 커피를 마셨다. 원샷 투샷 쓰리샷….

카페 구석진 곳에 앉아 진달래 맛을 느낀다. 백운산에서 따먹은 꽃인데 지금도 커피 맛이 난다. 이제 커피를 마셔야 한다. 선뜻 주문하지 못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받는 곳으로 향한다. 메뉴판을 보지 않고 데스크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카운터에 선 여자가 눈을 맞춘다. 저 여자는 커피에 사랑의 기도를 몇 샷이나 담을까. 진달래 커피 찐하게 주세여. 여자 얼굴에 향기가 핀다. 그 미소를 호흡하며 출입문 밀고 밖으로 나선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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