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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읍성(光陽邑城) 이야기

기사승인 2024.03.27  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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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종년 광양경제신문 논설위원

조선시대 행정구역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부, 목, 군, 현의 330개 고을이 있었다. 그 중에 160여개 지역에 읍성이 축성되었다. 城은 적을 방어하기 위해 흙이나 나무, 돌로 높이 쌓아 만든 담장을 일컫는다. 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도성과 읍성이다. 도성(都城)은 임금이나 황제가 거처하는 도읍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다. 읍성(邑城)은 지방의 관아와 민가를 둘러서 쌓은 성을 말한다. 

여기서 읍(邑)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으로 둘러싸인 취락을 의미하며 종묘와 왕궁이 있는 도성(都城)과 구별하였다. 읍성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방의 주요한 도시를 둘러싼 읍성이 산성과 같이 산을 의지한 위치에 있었던 흔적들이 보여지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9주(州) 5소경(小京)이 지방의 큰 고을을 이루었고 신문왕때 읍성이 축조 되었던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지방주요도시에 읍성이 축조 되었고 조선시대로 이어져 세종 때부터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바다가 가까운 지역의 읍성들이 새로 축조되거나 개축되었다. 

이렇게 읍성은 조선왕조의 마지막까지 존속 되었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해 읍성철거령이 내려져 거의 모든 읍성들이 철거되었다.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정조 때 축조된 수원 화성(華城)이 대표적이며 이밖에 동래읍성, 해미읍성, 비인읍성, 남포읍성, 홍주성, 보령읍성, 남원읍성, 고창읍성, 흥덕읍성, 낙안읍성, 진도읍성, 경주읍성, 진주읍성, 언양읍성, 거제읍성 등이 있다. 광양읍성은 1413년(태종13년)에 축조되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다.

당시에는 목책성이었으나 1430년(세종12년)을 전후하여 석축성으로 개축되었다. 성의 규모는 둘레 1,812척, 높이 7척의 작은 성이었다. 성안에 우물 5개와 못 1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광양읍성 남쪽 외곽에 자리 잡은 유당공원은 1528년 광양현감 박세후가 읍성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한 비보림으로 500년 숨결을 면면히 이어온 도심 속의 공원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켜켜이 새겨진 500개의 나이테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수형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235호 ‘광양읍수(광양邑藪)와 이팝나무’로 보호되고 있는 노거수들은 오늘도 광양의 역사를 지키고 이어가고 있다. 광양에는 흔히들 볼 것이 없다고 자조적인 비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면 자랑거리가 수북이 쌓여있는 곳이 광양시이기도 하다. 유당공원은 도심 속의 정원으로서 8천여 평의 아름다운 숲을 감상하면서 인근 도립미술관과 예술창고, 광양읍 5일장, 불고기특화거리와 광양역사문화관, 인서리공원, 2024년 2월 1일부터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된 옛, 서울대학교 연습림관사, 수목원, 장도박물관을 2시간 내에 둘러 볼 수 있는 특별한 관람코스가 되어 줄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면 더욱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2023년 12월 7일 광양문화원에서는 지역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지역문화유산인문학강좌 ‘광양읍성의 역사와 복원’이라는 심포지엄을 개최 하였다. 

이성웅前시장을 비롯한 시민들과  박노회歷代문화원장, 김종호문화원장, 김휘석직전문화원장등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룬 가운데 전문가들의 발표를 경청 하였다. 심포지엄은 시민들에게 광양사랑과 관심, 광양읍성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강의를 해주신 이수진 동신대학교 영산강연구썬터 실장의 ‘문헌을 통해본 조선시대 광양읍성과 읍치의 변화’ 조근우 마한문화연구원장의 ‘광양읍성의 발굴 자료와 의의’ 김종순 前나주시문예과장의 ‘나주읍성권역 문화유산복원’은 자료의 준비와 강의 내용이 알차서 시민들의 많은 호응과 질문이 이어 지기도 하였다. 그렇다.

광양읍성을 복원하는 것은 광양의 정신과 숨결을 되찾는 일이다. 단순한 건축물의 복원이 아니라 그 속에 스며있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과 땀의 흔적을 복원해 내는 것이다. 아쉽게도 광양읍성은 현실적으로 지금 복원해 낼 수는 없다. 1920년경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우리 민족문화와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각 지역의 역사자원을 헐어 버리고 도로를 내고 토목공사를 시도 하였다. 광양읍성도 그 당시 파괴되어 곳곳에 성 돌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비록 지금 원형대로 복원은 하지 못하지만 광양읍성의 모습을 축소판으로 만들어 광양역사문화관 내에 설치했으면 좋겠다. 동헌, 객사, 작청, 훈도청, 라장청등 선열들의 숨결이 담긴 건물들을 작게나마 복원해서 자랑스러운 광양의 기상과 정신을 상기하는 멋진 ‘광양읍성 조형물’이 만들어지길 시민 여러분과 함께 기원해 본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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