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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콩트 11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 살고 있을까

기사승인 2020.08.03  09: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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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삼이는 아줌마의 가랑이에...

<친일파의 이력서>

나는 80년대 중 후반, 온 서울 시내가
민주화 운동의 열망으로 뜨거웠을 당시 시위를 진압하는 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이후 나의 군 생활을 탓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본의는 아니었더라도 시위진압 부대에서의 군 복무는 내 인생의 오점처럼 느껴질 정도여서 이력서에 병역사항을 기재할 때 가책을 느끼곤 했다.

각설하고….

다음은 1950년 한국전쟁 개전 초기 한국군 주요 지휘관의 명단이다

육군 총참모장 : 채병덕 (일본군 출신, 당시 36세 )

육군 1사단장 : 백선엽 (만주 군관학교 출신, 당시 30세)

육군 2사단장 : 이형근 준장 (일본군 출신, 당시 30세)

육군 3사단장 : 유승렬 대령 (일본군 출신, 당시 57세)

육군 5사단장 : 이응준 소장 (일본군 출신, 당시 59세)

육군 6사단장 : 김종오 대령 (일본군 출신, 당시 29세)

육군 7사단장 : 유재흥 준장 (일본군 출신, 당시 30세)

이들 모두 일본 육사와 일본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군 출신으로 일왕에게 충성의 맹세는 물론 본인들도 황국 시민 됨을 자랑스러워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저들의 입장에서 조선의 독립은 꿈에라도 악몽이 될 수 있었다.

또 한 명, 나이 제한에 걸려 지원 자체가 불가능해지자 일왕에게 견마지로 운운하는 혈서를 써 만주군관 학교에 입학이 특별 허락된 이도 있었다.

그가 지원 당시 썼다는 혈서 여부는 그를 지지하는 쪽에서 사실 여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에 그 부분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그가 만군과 일본육사를 거친 일본군 장교 다까키
마사오 였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저들은 해방 이후 본인들의 반역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지라 도피 생활을 했는데 반민특위 활동이 이승만에 의해 흐지부지 해체되자 단죄는커녕 이번에는 대한민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한국군 창설의 주역들이 되었다.

일왕에게 충성 맹약하던 사람들이 상황이 바뀌자 이번에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운운하며 변신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또한, 저들은 한국전쟁을 통해 완벽한 면죄부를 받고 전쟁 영웅으로 불리며 독립열사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 국립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저들의 반민족 행위와 비교는 좀 그렇지만, 나는 나의 본의 아닌 군 복무마저도 이다지도 죄스럽고 굴욕스러운데….정말 궁금하다. 저들도 살면서 분명 이력서는 썼을진대….

일본군 출신 경력을 기재하며 자랑스러워 했을까? 아니면 민족을 배반했던 것에 양심상 일말의 가책이라도 느꼈을까? 세계사를 보더라도 반민족행위자들이 용서받아 다시 그 나라의 지도층이 되는 경우는 좀처럼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독도 얘기만 나오면 정치적으로 진보 보수 가릴 것도 없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일본타도를 소리높여 외치며
지금 당장 혈서라도 쓸 기세로 흥분한다.

하지만 독도 문제의 단초를 직간접적으로
제공하고 일왕에 충성을 맹약했던 친일파들과 그 후손들이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도록 응원하고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한국 사람들의 이율배반적 의식구조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들의 친일 행적이 당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저들과 동시대를 살며 목숨을 바쳤던 이분들의 희생은 또한 어찌 해석해야 할까?

친일파들이 끝까지 살아남아 호의호식과 온갖 영광을 누릴 때 저분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분들이다.

물론 만고의 역적 김일성에 의해 저질러진 동족상쟁의 비극 앞에 저들이 누란의 조국을 지켜냈다는 공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 때문에 지금도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 문제를 두고 후손들이 분열하며 갈등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며 꼬이고 꼬여버린 역사의 아이러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유학 전 윤동주가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 후 참담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참회록을 음미하며 글을 마무리 지어본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연재 콩트 11 :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화장실 벽은 이제 리비도에 갓 눈뜨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은밀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춘화도이며 음란 정보지와도 같은 기능을 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생식기 그림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다양한 체위를 묘사한 낙서들은 아이가 훔쳐보았던 어른들의 행위와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간혹 새 낙서가 기존의 낙서 위에 쓰여지기도 했는데 아무개와 아무개가 화장실에서 관계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내용에서부터 여자아이가 수음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했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급하게 휘갈겨 쓴 단순한 것들도 있었지만 공들여 쓴 흔적이 엿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낙서를 통해 대리 배설하는 기능도 있었기에 조숙한 녀석들은 성적인 판타지를 충족을 위해 나름 구체적인 정황까지 제시하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아이는 급하게 일 보러 가는 척 주로 고학년이 사용하는 변소에 가서 낙서를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어느 날은 벽 한구석에서 오래전에 쓰인 듯한 낙서를 발견했는데 춘삼이가 같은 반 아무개랑 흘레를 붙었다는 내용이었다.

춘삼이는 아이의 국민학교의 선배였을뿐더러 변 씨라는 흔치 않은 성이 이름 앞에 명시되어 있었기에 분명 춘삼이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 아이는 변소에 갈 때면 또 춘삼이 관련 낙서는 없는지 구석구석 찾아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며칠 만에 춘삼이 관련 낙서를 하나 더 찾아냈는데 변춘삼과 애덕이가 교실에서 ×××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춘삼이와 애덕이의 관계가 꽤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낙서일 수도 있었기에 아이는 며칠 전 춘삼이와 애덕이가 상엿집에서 벌였던 짓거리를 생각해내고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몇 개 더 찾아냈는데 춘삼이와 낙서로 엮인 사람은 지금도 근무 중인 선생님에서부터 애덕이까지 네 명이 넘고 있었다.

진위는 알 수 없더라도 낙서와 당시의 춘삼이 행적으로 보건대 춘삼이는 꽤 복잡한 여성 편력을 지닌 인물임에는 틀림 없었다.

춘삼이 엄마는 춘삼이가 어렸을 때 무슨 연유에서인지 도망갔다고 했다.
아이에게는 춘삼이 아버지 얼굴도 가물가물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포크레인 기술자로 중동으로 돈 벌러 나간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춘삼이는 할머니와 살았다.

춘삼이네 집과 아이네 집은 허술한 돌담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두 집 모두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규모가 꽤 큰 기와집이었다.

아줌마는 춘삼이네 집에 방을 얻어 살았는데 아저씨와 결혼한 지는 꽤 되었지만, 아직 아이는 없었다.

아저씨는 무골호인으로 늘 허허롭고 착한 사람이었다.
자신도 운전기술로 춘삼이 아버지처럼 중동에 나가 몇 년 고생하면 집 한 채 장만할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며 나갈 방도를 알아보는 중이라 했다.

두 부부는 옆집에 살던 아이를 이뻐하며 챙겨주었다.

아이 역시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아이의 엄마는 몇 해 전 병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사업을 한다며 객지로만 떠돌아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춘삼이와 아이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를 살뜰히 챙겼고 아이도 춘삼이를 친형 이상으로 따랐다.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고 방안 두 남녀를 훔쳐보는 아이의 숨소리도 함께 거칠어졌다.
춘삼이는 사냥한 먹이를 함부로 탐하는 짐승처럼 아줌마를 위아래로 타고 넘으며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둘은 쌍기역도 되었다가 마주 보는 니은으로 겹쳐지기도 했다.

어떤 때는 미음 자가 되어 아줌마가 춘삼이의 분신을 입에 물고 피리 불었고 춘삼이는 아줌마의 가랑이에 머리를 박고 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둘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미끈거렸고, 춘삼이의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아줌마의 흐느끼는 신음 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었다.

(계속)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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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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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바라기 2020-08-08 01:48:58

    작가님의 글이 뒤늦게 생각나 부랴부랴 들어왔습니다. 성인콩트와 인문학, 정치 얘기의 조합이 어울릴거란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었는데,신기하게도 잘 어울리네요.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요. 더운여름 잘 보내시고 월요일날 또다른 이야기 기다리겠습니다.삭제

    • 한국사람 2020-08-06 08:24:28

      작가님 요즘 날씨도 더운데 오늘 글은 더 덥게 합니다.ㅎㅎ.
      춘삼이녀석 왠지 부럽습니다.삭제

      • 긴머리소너 2020-08-04 00:48:35

        춘삼이의 나이는 도대체 몇 살 인가요?삭제

        • 들풀 2020-08-03 23:31:54

          애덕언니의 순정파
          인물이 드디어 새드엔딩으로
          스토리가 결말로 이어지나요
          개인적으로는
          애덕언니의 인물에
          관심과 애정이 더 깊어집니다
          다음호가 벌써 기다려 집니다삭제

          • 旦斐 2020-08-03 23:18:57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사람들이
            해방이되자
            대한민국에 충성을 맹세하며
            변신에 성공하다 ㅠㅠ삭제

            1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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