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가겠냐 했던 그 지독한 여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밤새 비가 내렸던 어느 날 아침 바람의 온도가 많이 달랐다. 이제 여름이 완전히 우리 눈앞에서 ‘꺼져버린’ 것이다.
이 지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뜨거워져서 인류를 고통에 빠뜨릴지 지금 당장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한 살 늘어가는 나이테도 상관없다. 혹독한 여름을 보내고 느끼는 이 상쾌함이 얼마나 큰지, 이번 여름은 정말 지옥 불에서 헤매었던 게 아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찬물샤워를 해야 했던 여름날, 아랫집 베란다 누수로 인해 우리 집 베란다를 다 뜯고 대공사를 했다.
이참에 그냥 베란다를 ‘나만의 카페‘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고 비가오거나 바람이 불면 커튼을 젖혀 10층 아래 땅의 기운을 받으려고 창문을 열어 둔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막 내린 향긋한 커피를 한 모금 털어 넣고 읽다 만 책을 펼치면...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길모퉁이 가게 ‘신바람 난 찐빵’집 이야기를 하려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며칠 전 점심을 먹고 오는 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은 찐빵 집을 발견하고 주저 없이 멈춰 섰다.
찐빵과 만두를 골고루 주문하고 좁은 매장 안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만두와 찐빵이 익어가는 동안 키가 큰 사장님은 보라색 찐빵 하나씩을 일행과 나에게 건네주었다.
“금방 밥 먹고 와서 배가 불러요”, “그래도 한 개 드셔보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엉거주춤 앉아서 사장님이 종이에 싸서 건네 준 뜨거운 찐빵을 호호 불며 맛있게 먹었다. 방금 밥을 먹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찐빵 한 개를 반쯤 먹었을 때 사장님의 서비스는 또 우리를 감동시켰다. 커다란 찜 솥에서 호빵과 만두가 알맞게 쪄지는 동안 어느 새 커피를 내려서 내밀었다.
헐...사장님은 땅을 파서 장사를 하는 걸까?
사장님의 친절함에 마음씨 착한 일행은 뭐라도 사야겠다며 냉장고에서 식혜와 수정과를 한 개씩 꺼내 왔다. 자꾸만 몸동작이 느려지는 파킨슨을 앓으며 무거운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10분씩이라도 걸어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 주시려는 어머님도 팥이 들어 간 찐빵을 좋아하신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부리가 눈을 사로잡게 마련인가 보다.
중마동 환경교육센터 건너 초원관광 건물 코너에 있는 ‘신바람 난 찐빵 만두’ 가게도 그렇다.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문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마스크를 쓴 아버지와 아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찐빵 먹을래? 만두 먹을래? 따뜻한 거 한개 먹어”
포장까지 꼼꼼하게 정성을 다하는 사장님의 기분 좋은 서비스를 뒤로 하고 만두와 찐빵, 식혜와 수정과를 챙겨서 나왔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항상 안부만 궁금해 하던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저 행복했다.
직업상(?) 언젠가 필요하겠다 싶어 여기 저기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사장님은 “직접 빚은 것도 아닌데요 뭐...”한다.
직접 빚은 것이 아니면 어떤가? 사장님의 정직하고 친절한 모습에 모든 맛있는 맛이 다 들어가 있는데...
벌써 차 시트를 데워야 하는 시간, 짧은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마음의 거리는 가깝지만 공간적 거리가 멀어 안부를 미뤄왔던 좋은 사람들에게 길모퉁이 찐빵집 ‘신바람 난 찐빵’에 들러 따뜻한 마음 한 봉지로 ‘情’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